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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자호란 의병장 충장위호군 이언의(李彦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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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5-10-19 00:14 조회4,47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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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천묘지기행(14)


병자호란 의병장 충장위호군 이언의(李彦儀)


cemetery14-1.jpg


맹추위가 기승을 부리던 날, 병자호란때 의병장으로 참전해 장렬하게 전사한 이언의 장군의 묘소를 찾았다.


조선말까지 성주군 신곡면으로 속하여 숫돌봉자락에 자리잡은 소용골은 풍수지리로 볼때 숫돌봉에서 솟구친 청룡이 감천 방향으로 길게 뻗친 형국인지라 늪소(沼)자에 용용(龍)자를 써서 소용골이라 했다고 전하는데 의병장으로 이름을 떨친 이언의장군을 배출한 마을의 기상이 결코 우연이 아닌 듯 싶다.


소용골은 마을입구가 좁고 안으로 들어갈수록 넓어지며 두 갈래의 골짜기로 나뉘는데 전사한 장군의 의관을 물어 왔다는 말무덤인 의마총(義馬塚)을 지나 재실 영모재(永慕齋)를 돌아들면 묘역으로 올라서는 오솔길이 후손들의 정성만큼이나 가지런하다.


숫돌봉 자락에 모셔진 묘역은 위로부터 충장위호군의 조부이신 통훈대부 용담현령 이검송(李儉松)과 숙부인 화순최씨의 합분이 자리를 잡고 아래로 부친이신 진사 이낭동(李稂東)과 완산이씨의 합분이 있으며 그 아래로 충장공과 성산배씨의 합분이 오롯이 자리를 잡고 있다.


또 아래로는 충장공의 3남인 통정대부 은계(殷繼)와 사남인 첨정 은확(殷確)의 묘가 차례로 내려서 있다.


충장공의 묘역은 숫돌봉을 주산(主山)으로 하여 서당골 당산을 백호(白虎)로 하고 맞은편 감덕골을 청룡(靑龍)으로 삼았으며 감천을 넘어 조마 신안리 안새래마을 뒷산인 마늘골 만역산을 안산(案山)으로 삼았다.


주변으로 드넓게 펼쳐진 들판과 평야지를 가로지르는 감천(甘川)의 위세가 한눈에 조망되는 것이 과연 전장(戰場)을 휘달렸을 충장공의 기개에 어울리는 유택지(幽宅地)로서 손색이 없음직 하다.


충장공은 1600년(선조33) 성주군 신곡면(現감천면 도평리)진사 이낭동과 완산이씨 사이에서 태어나 자를 윤칙(允則)이라 했다.


어려서부터 효행이 남달라 연이어 부모상을 당하자 6년간 여막에서 시묘를 살았는데 밤낮으로 곡을 하니 원근동에서 하늘이 낸 효자라며 칭송이 자자했다.


이후 향리에서 학문에만 전념하던 충장공은 1636년 병자호란이 발발하자 “나라가 위태로운데 어찌 초야에 묻혀 글만 읽고 있으랴”하며 사재를 청산해 인근 동리에서 의병을 모아 크고 작은 전투에 나아가 공을 세웠다.


1637년 인조가 남한산성에 포위되었다는 소식을 접한 경상도일대의 의병과 관군 4만명이 합세하여 경상좌병사 허완(許完)과 우병사 민영(閔栐)을 지휘관으로 삼아 근왕병(勤王兵)을 구성하고 남한산성으로 진격했는데 그해 1월3일 경기도 광주 쌍령(雙嶺)에서 청군 기병대와 치열한 전투가 벌어져 충장공을 위시한 수많은 우리 병사들이 장렬히 전사했다.


전투가 끝난뒤 청군은 우리군사들의 시신을 대부분 불에 태우는 만행을 저질렀는데 충장공의 시신도 이로 인해 수습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런데 기적같은 일이 벌어진 것은 이로부터 3일후의 일로 마을뒷산에서 말의 울음소리가 들려 식솔들이 나가보니 장군의 애마가 전신에 창상을 입은 채로 피묻은 투구를 물고 쓰러져 있었는데 말은 그로부터 3일후 주인을 뒤를 따라 죽고 말았다.


집안에서는 충장공의 시신도 없이 말이 물고 온 투구를 안장하는 의관장(衣冠葬)으로 대신 장사지내고 주인이 전사하자 투구를 물고 몇일을 달려 죽음을 알린 의로운 말을 기려 마을중앙의 뒷재에 말을 묻어 의마총(義馬塚)을 만들고 의마비(義馬碑)를 세웠다.


cemetery14-2.jpg


나라에서는 호란이 수습된 후 경상도관찰사의 천거로 공신록에 충장공의 이름을 올리고 충장위호군(忠壯衛護軍)을 하사했으며 개령현감 이종상(李鍾祥)이 묘갈문을 짓고 경기감사 홍순형(洪淳馨)이 영모재 기문을 닦았다.


<김천문화원 사무국장 송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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