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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사학을 일군 여성교육자 최송설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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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5-10-19 00:37 조회15,65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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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천묘지기행(19)
민족사학을 일군 여성교육자 최송설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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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곡동 김천중고등학교 뒤 고성산 자락에는 일제 강점기 막대한 재산을 민족육영사업에 바친 최송설당(崔松雪堂)의 묘소가 있다.
 묘소로 오르는 길 옆으로 1919년 여사가 말년을 보내기위해 만해 한용운의 자문을 받아 지었다는 정걸재(貞傑齋)는 6.25전쟁 때 폭격으로 소실되고 주춧돌만 덩그러니 남아있다. 

 1935년 정걸재의 부속건물로 지었다는 취백헌이 그나마 오롯이 보존되고 있어 묘소로 오르는 길을 외롭지 않게 지켜준다.
 돌계단을 따라 산자락을 오르다보니 오랫동안 묘소를 가려온 묵은 나무들을 벌채하느라 인부들의 손놀림이 분주하다.
 이윽고 당도한 묘소는 일생을 통해 검소함과 서릿발 같은 담대함을 실천했다는 여사의 기품을 말해주듯 단아하고 정갈하기 이를 때 없다. 

 송설당의 묘는 고성산을 주산(主山)으로 하고 직지천 너머 구화산을 안산(案山)으로 삼아 북향하고 있다. 여사가 정걸재를 건립한 그 이듬해인 1920년 음택지로서 가묘를 잡을 때 전국 최고의 지관을 초빙해 고성산 일대를 돌아보게 했는데 당초 지관은 지금의 학교 기숙사 터를 길지로 잡아주었다고 한다. 그러나 송설당은 끝내 이를 사양하고 두 번째로 꼽은 자리에 자신의 가묘를 만들게 했는데 훗날 그 자리에 학생들이 원대한 꿈을 펼치는 학교기숙사가 들어섰으니 후학에게 좋은 묘터마저 양보한 송설당의 혜안에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송설당은 1855년(철종 6년) 김산군 군내면 문산리(현 문당동)에서 화순최씨 최창환(崔昌煥)과 경주정씨 사이에서 무남 3녀의 장녀로 태어났다. 대사성을 지낸 최사로(崔士老)의 후손으로 조선시대말까지 문무를 겸비한 명문가였는데 증조부 최봉관이 1811년 평안도에서 일어난 홍경래의 난에 연루가 되어 후손들이 전라도 고부로 유배가면서 집안이 기울어졌던 것이다. 김천으로 이주한 부친은 서당을 개설했는데 이때 부친으로부터 받은 엄격한 교육적 환경이 훗날 송설당의 교육관과 여류문인으로서의 두각을 나타낸 배경이 되었던 것이다. 

 부친이 1886년 별세하자 조상의 한을 풀어 드리기로 맹세하고 재산을 정리하여 1894년 상경하기에 이른다. 당시 민비가 시해되고 고종이 엄비를 총애하여 왕자출생을 갈구할 때였는데 송설당이 왕자탄신을 발원하는 기도를 올리고 출산용품을 진상한 일이 계기가 되어 영친왕의 보모상궁으로 입궁하게 된다.
 이로부터 1907년 영친왕이 일본으로 떠나기까지 10여 년간의  궁중생활을 하며 고종으로부터 조상의 죄를 벗는 신원(伸寃)을 받았고 많은 재산을 모아 고향 김천에 무수한 자선을 베풀었다. 또한 당대의 지식인들과도 당당히 교류하며 여류문인으로서 한시259수와 국문가사 50편을 남겼는데 ‘소나무(松)’라는 시를 통해 송설당의 웅혼한 교육관을 엿볼 수 있다. 

 담장 안에 심은 소나무 한 자 남짓하여
 가지와 잎 몇 성상 겪었냐고 물었더니
 내 나이 이미 늙음을 비웃기나 하듯
 다른 날 동량됨을 보지 못 하리네. 

 수많은 업적 중에서도 김천중고등학교의 전신인 김천고등보통학교를 세운 것이 으뜸이었는데 1930년 학교 설립을 위해 당시에는 천문학적인 액수인 32만원이 넘는 전 재산을 선뜻 출연했던 것이다. 조선에 대한 우민화정책으로 실업학교만을 허가하던 총독부의 방해공작을 거뜬히 물리치고 1931년 인문계 고등보통학교를 설립했는데 이것은 식민지배를 벗어나는 길은 사립학교를 통한 민족정신 함양에 두었던 송설당의 강한 신념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길이 사립학교를 육성하여 민족정신을 함양하라. 잘 교육받은 한 사람이 나라를 바로 잡고 잘 교육받은 한 사람이 동양을 편안하게 할 수 있다. 마땅히 이 길을 따라 지키되 내 뜻을 저 버리지 마라” 
 송설당은 1939년 이 유언을 남기고 85세를 일기로 운명했다. 꿈에도 그리던 여사의 소원이 헛되지 않아 김천중고등학교는 개교 이래 우리나라를 이끌어가는 무수한 동량(棟樑)을 배출한 명문사학으로 굳건히 자리를 잡았다. 

<글/김천문화원 사무국장 송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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