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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례면편(첫회)-개관,상부1리(上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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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5-10-19 02:17 조회4,22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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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례면편(첫회)
[2007-10-04 오전 10:18:00]

김천마을이야기(120)


지례면편(첫회)


   지례면 개관




 감천과 국도 3호선을 따라 남북으로 길게 형성되어있는 지례면은 삼국시대부터 가야,신라,백제의 접경에 위치해 군사적 요충지로 알려져왔다.
 
 신라 진흥왕때는  상주 사벌주에 속해 지품천(智品川)현으로 불렸고 경덕왕(757년)때에 개령군으로 속하면서 지례현으로 고쳤으며 고려 현종때 성주 경산부에 예속되었다가 공양왕때 처음으로 중앙정부에서 관리인 감무(監務)를 파견했다.
 
 지품천이라는 지명은 “깊다”의 이 고장 사투리인 “지푸다”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고있는데 향토사학자인 지례면 상부리 문재원씨는 과거 구성면 구미리와 미평리사이의 감천하폭이 좁고 하상이 높아 물이 수시로 역류하면서 지례 교리,상부리일대가 늪지대를 이루고 있었는데 옛날 큰비가 내리면서 구미리 일대가 산사태로 하폭이 급격히 넓어져 물의 흐름이 원활하게 되면서 지례일대에 물이 빠져 현재와같이 경작지와 마을이 들어설 수 있었다는 것이다.
 
 달리 지례를 구성(龜城)이라고도 했는데 이는 면소재지의 진산인 주악산 아래에 있었던 저수지에서 거북모양의 바위가 출토된 관계로 일대 산성을 구산성(龜山城)이라 했고 여기서 유래되어 지례의 별칭으로 불렸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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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화대산과 주악산 전경




 뒤에 조선이 개국되고 태종때인 1410년에 상주에 속한 독립현으로 현감이 파견되었고 1896년 군으로 바뀌었다가 1914년  김천군 지례면으로 예속되었다.
 
 지례는 감천이 상류에 위치한 관계로 일찍이 신석기, 청동기인들이 들어와 선사시대문화를 이루었는데 가야문화권과의 교류통로로 알려지고있는 똥재인근에는 발굴이 되지않아 명확히 규명은 되지 않았으나 구성송죽리 선사유적 보다도 시대가 앞선 것으로 보고있다.
 
 또한 임진왜란시에는 왜장 고바야가와가 이끄는 제6진을 섬멸한 호국의 고장이요 여말선초 절의를 지킨 장지도 선생의 절개와 제자윤은보, 서질의 효행이 서린 충효의 고장이기도 하다.
 
▷상부1리(上部)
 
 교리와 함께 지례면소재지에 해당하는 상부리는 조선시대까지 지례현 하현면에 속한 마을이었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때 하현(下縣),상현(上縣),장촌(匠村),동산(東山)을 합해 상부리(上部里)라 했는데 1936년 병자년 수해때 장촌,동산마을이 유실되고 상부,하부마을만이 남아 이를 합해 상부리라 했다.
 
 이 마을은 원래 지례박씨등 토착성씨가 거주하고 있었는데 조선 성종때 문약(文略)이라는 선비가 합천에서 이거해 정착한 이래 대대로 남평문씨 순평공파(順平公派)와 김해김씨가 집성을 이루었다.
 
 상부리 뒷산인 봉화대산과 주악산에는 봉화대와 성터의 흔적이 남아있는데 이는 지례가 군사적, 교통적으로 요충지였음을 알게 해주는 대목이다.
 
 이 산에는 고려가 망하자 지례에 낙향해 은거하면서 후진을 양성한 반곡 장지도(張祉) 선생의 묘소가 있는데 제자인 윤은보와 서질이 봉화대산과 주악산사이로 난 고개를 쉼없이 드나들며 지극정성으로 스승의 시묘살이를 하는 효심에 탄복한 호랑이가 노루를 물어다주어 제사를 지냈다하여 이름 붙혀진 정성고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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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공제 전경. 당시에 축조한 제방은 현재보다 안쪽에 있었다고 전한다.




 이 마을 또하나의 명물은 감천제방으로 잦은 수해로 인해 고통받는 현민들을 위해 이채(李采 .1745-1820)현감이 재임기간중 총력을 다해 쌓은 둑으로 현민들은 그 고마움을 잊지않기위해 이공제(李公堤)라 불렀다고 한다.
 
 이채현감은 이것으로도 모자라 상부와 교리 사이에 세뚝으로 불리는 보강제방을 쌓아 현민이 집중적으로 거주하는 교리일대를 보호하고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는 치밀함을 보였는데 실제로 지난 2002년 수해때도 이 세뚝덕분에 교리일대가 안전할 수 있었다고 하니 이채현감의 애민정신과 선견지명이 수백년의 세월을 거슬러 고귀하기 그지없다.
 
               <글/김천문화원 사무국장 송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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