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마면편-신곡3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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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5-10-19 03:00 조회4,274회 댓글0건본문
조마면편(신곡3리) | |||||||||
[2008-01-31 오후 4:21:00] | |||||||||
김천마을이야기(136)
마을에는 이세간을 비롯한 성주이씨 조상들의 위패를 모신 사당상친사(尙親祠)가 섰는데 시묘살이때의 인연으로 함께 살던 호랑이는 이세간이 졸하자 울면서 굶어죽었고 이를 기특하게 여긴 후손들이 호랑이 그림을 상친사 벽에 그리고 뒤뜰에 의호신령비(義虎神靈碑)를 세워 호랑이와 남강선생을 추모했다고 한다. 그때의 호랑이 그림은 필자가 처음 상친사를 찾은 10년전 만해도 희미하게나마 확인할 수 있었는데 수년전 상친사를 개축하면서 사라져 이제는 볼 수 가 없게 되었다. 이세간의 손자인 진사 이주룡(李周龍. 1819- )도 효자로 이름이 났는데 네 살때 어머니를 여의고 동생을 키우다 배가고파 우는 동생을 업고 뜰에 나아가 통곡하니 땅이 갈라지며 샘이 솟아 그 물을 먹여 동생을 키웠다는 이야기가 전하는데 뒤에 사람들이 이 샘을 가리켜 유천(乳泉)으로 불렀고 지금도 상친사 아래에 샘이 온전히 남아있다. 상친사 입구에 집을 짓고 3대째 사당을 지키고 있는 후손 이종환(73세)씨는 자랑스런 조상을 가까이에서 모시는 것만으로도 족하다며 환하게 웃는다.
백화동위로는 순천박씨 집성촌으로 유명한 신석동(新石洞)이 나온다. 마을중앙에는 이 마을출신으로 순조때 사헌부감찰을 역임한 박빈(朴斌)의 처 함양오씨를 기리는 효열각이 섰는데 함양오씨부인은 시아버지를 10년간 지극으로 간병하고 남편 박빈이 졸하자 음식을 끊고 3일만에 자결을 택한 효부이자 열녀로 기록되고 있다. 지역 유림의 천거로 1888년(고종25년)에 부인에게 정려가 내리니 신석동은 이웃한 백화동과 함께 효열(孝烈)의 명성을 이어오고 있다.
찾는 이 없는 저녁, 상친사 오르는 길을 말끔히 치워놓은 성주이씨후손 이종환할아버지의 마음씨 만큼이나 백화동의 설경이 아름답다. <글/김천문화원 사무국장 송기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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