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산면편 - 수도산아래 첫 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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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5-10-19 03:26 조회4,898회 댓글0건본문
증산면편(수도산아래 첫 동네) | |||||||||
[2008-07-24 오전 11:02:00] | |||||||||
김천마을이야기(160) 평촌리 장평마을로부터 수도계곡의 절경을 따라 오르면 수도암 아래에 수도리가 다소곳이 앉아있다. 수도리는 조선시대말까지 성주목 증산면으로 속하다가 1895년 증산면이 양분 될 때 성주군 내증산면이 되고 1906년 지례군 내증산면으로 편입되었다가 1914년 김천군 증산면 수도리로 개편된 후 오늘에 이르고 있다. 수도리는 약 천년전에 김봉달(金鳳達)이라고 하는 사람이 처음 들어와 살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하는데 수도리라고하는 마을의 지명은 마을 뒤 수도산에 쌍계사의 산내암자였던 수도암(修道庵)으로부터 비롯되었다.
▲마을의 지명이 비롯된 수도암 전경 또 수도리로부터 조금아래 개울너머 내원골에는 내원(內院)으로 불리는 작은 마을이 있는데 예전에는 10여호가 살았다고 하나 지금은 2가구만이 남아 마을의 명맥만 이어가고 있을 따름이다.
▲수도리 주민들의 삶의 애환이 서린 조산(造山)돌무더기와 동목 전나무 마을입구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마을주민 박성향(71세)씨는 1960년대초 까지만해도 가구수가 1백여호에 달해 초등학교 분교가 마을에 있을 정도로 큰 마을이었는데 70년대 이후 타처로 대부분 떠나고 말았다고 회상한다.
마을오르는 길목에 자리잡은 용소폭포는 한강(寒岡) 정구(鄭逑)선생이 수도계곡의 절경을 노래한 무흘구곡(武屹九曲)의 마지막인 제9곡을 장식하는 절경으로 김천제일의 폭포를 자랑한다.
▲용이 승천했다는 전설을 간직한 용소폭포 <글/김천문화원 사무국장 송기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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