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천동편
페이지 정보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5-10-19 03:37 조회4,334회 댓글0건본문
[2008-12-11 오전 10:21:00] | |||||||||
김천마을이야기(179) (지난호에 이어 계속) 조마방면의 안정계마을로 부터 거창방면 국도와 연결되는 삼거리는 예로부터 장승배기로 불리는데 이곳에 조선시대말까지 주막과 장승이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장승배기 전경 양천2동으로 속하는 신기(新基)와 개울내기를 거쳐 안으로 들어서면 하리로 불리는 양천3동이 자리 잡고 있다. 마을입구에는 이 마을 출신으로 육당 최남선이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청빈한 관리로 꼽았던 노촌(老村) 이약동(李約東) 선생의 신도비가 우뚝 서있다.
▲노촌 이약동선생 신도비 이약동선생은 제주목사, 전라도관찰사, 호조참판 등 40여년간 관직에 있으면서 부임지에서 마다 선정을 베풀어 청백리로 명성이 자자했다. 낙향하면서 식솔들에게 또 화순최씨 가문의 최선문(崔善門)선생은 문종때 공조판서를 역임했는데 훗날 세조가 왕위를 찬탈하자 고향으로 낙향해 세조의 부름을 끝까지 거절한 절의충신으로 공을 따르던 점필재, 김종직은 “송죽같은 지조요 물과 달 같은 정신을 지닌 참 선비”라고 찬시(讚詩)를 바쳤다. 양지바른 마을이라 하여 양곡(陽谷)으로도 불리는 양천6동으로 상리와 음지마을 중간에 개가 누워있는 형상의 바위가 있다하여 이름 붙여진 와견촌(臥犬村), 와개촌을 불린 마을이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폐동이 되고 개형상의 바위만이 마을입구를 지키고 있다.
▲상리와 와개촌마을을 지키는 수호신으로 불렸던 개바위 상리마을 뒤로는 고성산자락인 매봉(鷹峰)이 솟아있는데 풍수지리로 볼 때 이 산은 매의 형상인지라 그 아래 닭이 앉은 터에 자리잡은 모 집안에서 흉사가 자주 발생하자 이주를 했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중리에서 새마을로 넘어가는 하로고개는 옛날 이 고개 정상부근에 샘이 있었는데 이 샘에서 물이 많이 나면 하로마을의 한 집안에 과부가 많이 생기고 물이 나지 않으면 또 다른 집안이 번성한다는 속설이 있어 분쟁끝에 샘을 메워버렸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글/김천문화원 사무국장 송기동> |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